5. 영어 시험을 보다

대학원생들은 보통 1학기 때 외국어 시험을 보게 된다.

보통 영어 시험인데 학기마다 한번씩 볼 수 있는데, 졸업 전까지만 합격만 하면 된다.

시험 면제 기준은 다음과 같다.

￭ 외국어 시험    면제 대상

▸최근 2년 이내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취득한    TEPS 327점, TOEIC 600점, TOEFL 60(IBT) 이상이 되는 경우,    제2외국어 한자능력검정 2급이상,    한자자격검증 2급이상,    한자급수자격검증 2급이상,    新HSK(중국한어수평고시) 5급 이상(舊HSK 6급이상),    JLPT 2급이상(일본어 능력) ▸교내·외 대학원 학위과정에서 외국어시험을 통과한 경우 ▸대학원에서 인정해 주는 영어 과정을 이수하여 면제기준을 통과한 자

 

이렇다 할 영어 점수도 없고 TOEIC 시험을 안 본지도 십 수년은 되었기 때문에 대학원에서 치르는 영어 시험을 보기로 했다.

원우님*들에게 물어보니 작년의 경우 짧은 영어 논문이 시험 문제였고 그 중에서 일부 내용을 번역하는 수준인데 그리 어렵지 않다고 했다.

* 원우님: 대학원에서는 학생들끼리 ‘원우님’이라고 호칭하고, 교수님이 학생을 부를 때는 ‘선생님’이라고 호칭한다. 내가 다니는 특수 대학원의 대학원생들 절반 이상이 대학교 다니는 자식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이고, 나머지 분들도 사회 생활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라서 그럴 것이다.

 

나도 3월에 영어 시험을 신청했고 시험 보기 2주일 전에 시험 문제지를 받게 되었다.

 

OMG...

 

맙소사!

내가 대학원 영어 시험을 너무 얕보고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TOEIC 600점의 기준이 이렇게 높았던 것인가?

 

조교님는 약 20페이지 정도 되는 논문을 2개 시험 대상자들에게 나눠주며, 이 중에서 2개의 문단의 번역을 하는 것이 시험이라고 내용을 전달했다.

영어시험용 논문 중 일부 발췌

 

나는 황급히 거래처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여기 영어 시험이 왜 이래요? 특수 대학원 맞아요? 너무 어려운데요?”

“응 괜찮아. 지금까지 불합격된 사람은 없었어”

“아니,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하나부터 열까지 모르겠어요!”

 

우선 급한대로 번역기를 돌려보고 요즘 잘나간다는 생성형 AI 프로그램도 돌려보았다.

분명, 한글로 번역이 되었는데 읽어보면 이해가 안 되었다.

대기업을 다니시는 형님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절망에 빠졌다.

 

남은 2주동안 열심히 공부했다.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고 번역기의 힘을 빌려서 억지로 문장을 만들고 외웠다.

소싯적이었으면 SKY라도 갈 기세였다.

주중에 퇴근 후 2시간 이상씩, 주말에는 5시간 이상씩 스터디 카페를 다니며 공부를 했다.

 

시험 당일이 되었다.

2개의 논문 중에서 첫번째 논문은 80%이상 감을 잡아서 어느 문장을 내놔도 대충 번역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두번째 논문의 출제 범위는...

신에게 기도를 드릴 수 밖에 없었다.

 

조교님 잘 부탁 드립니다.

 

시험지를 받고 당연하게도 일시적인 신앙심으로 찾은 신은 내 편일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말이 되게 써냈다.

그리고 1년동안 공부해서 ‘TOEIC 600점을 받아내자’라는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합격했다.

 

나중에 원우님들과 점수를 확인해봤는데 다들 아슬아슬하게 누락선을 넘은 점수를 받았었다.

거래처 형님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응 괜찮아. 지금까지 불합격된 사람은 없었어”